미디어가 만드는 여행 트렌드 '스크린 투어리즘'
-영상 속 성지를 찾아 떠나는 즐거움 -
글. 김다영 (히치하이커 대표)
엔데믹과 함께 야외 활동 및 여행에 대한 제한이 풀리며 여행과 관련 콘텐츠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구마불 세계여행>, '빠니보틀' 등 여행 콘텐츠와 유튜버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여행을 즐기는 방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팬데믹 전후로 전 세계 관광산업에서 가장 부상한 '스크린 투어리즘(ScreenTourism)'도 그중 하나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방문하려는 여행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지금, 스크린 투어리즘이 떠오르게 된 배경과 시사점 그리고 방문하면 좋을 스크린 속 여행지를 소개한다.
OTT가 이끄는 여행 트렌드, 스크린 투어리즘
▲출처: 여행 전문 언론 매체 <여행톡톡>
스크린 투어리즘은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관광객의 방문이나 관련 활동의 동인이 되는 현상이다. 일례로 올 초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흔히 ‘성지 순례’라 부르는 작품 속 배경이 된 지역을 방문하거나, 작품 속 영상과 해당 지역을 비교해보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 스크린 투어리즘의 개념 및 관련 사례는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팬데믹 전후로 스크린 투어리즘에 대한 언급이 크게 늘었다. 이는 록다운(lockdown)으로 인해 물리적인 실내 생활시간이 증가하면서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시청 시간이 동반 상승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영향으로 꼽힌다.
▲(좌) <오징어게임>의 공식 포스터 (우) <사랑의 불시착>의 공식 포스터
2021년 8월, 미국의 여행 매거진 '콘데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에는 '넷플릭스에서 받은 영감으로 서울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는 외국 에디터의 사연이 실렸다. 그는 외출을 못 하는 상황에서 TV를 들였고, 우연히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한국인에게는 일상적인 배경이 매력적인 스토리와 만나며,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다가온 것이다. "짜파구리와 붕어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에디터의 마지막 멘트는 드라마를 통해 생겨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여행 욕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2달 뒤, 서울과 한국을 다음 여행지로 검색하는 사람은 이 외국 에디터만이 아니었다. 2021년 10월 10일부터 1주일간 전 세계 구글 검색량에서 '제주도' 키워드의 검색이 폭증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상영을 시작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2021년 10월 기준으로 1억 4,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한 이 한국발 드라마는 전 세계인들이 여행 사이트의 검색창에 한국을 검색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2021년 9월, 세계 관광기구(UNWTO)는 넷플릭스와 협력해 '관광산업에서 넷플릭스가 끼치는 영향력'을 연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특정 국가의 문화를 다룬 콘텐츠를 시청하는 이들은 해당 국가로 여행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미식 테마의 리얼리티 쇼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Somebody Feed Phil)> 캐나다 몬트리올 편을 시청한 5개국 시청자들의 캐나다 미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78%나 증가했다.
이는 콘텐츠가 단순히 여행 수요의 증가를 넘어, 해당 국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거나 해당 국가가 생산한 브랜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속될 스크린 투어리즘의 명과 암
스크린 투어리즘의 유행은 팬데믹 이후에도 이어질까? 아직 2019년 수준으로 여행산업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스크린 투어리즘은 여행 얼리어답터의 중요한 여행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대만의 관광 입국이 풀리자마자, 대만의 드라마 <상견니>를 주제로 한 소위 '성지 순례' 여행이 이어졌다.
대만 정부에서 '상견니 순례 지도'를 한국어로 제작해서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기차역)과 순례 코스인 타이난 일대에 배포하고 있으며, 유튜브에 상견니 투어를 검색하면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사람)의 성지 순례' 브이로그가 쏟아져 나온다.
▲타이베이와 타이난에서 제작한 상견니 순례 지도
하지만 스크린 투어리즘의 부상은 그 커다란 파급력만큼이나 오버 투어리즘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HBO가 방영한 <왕좌의 게임>의 배경으로 등장한 이후 4년간 관광산업이 거의 38%나 성장했으며 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증가세가 멈추지 않았다. 급격히 증가한 관광객의 수요는 도시 혼잡도를 가중시킨 동시에 지역 생태계와 문화유산도 파괴했으며, 이로 인한 지역민과의 마찰 또한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투어리즘은 영화나 티비 프로그램의 힘을 통해 세계 각국의 관광 산업을 촉진시키고 여러 지역의 경제와 문화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그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영상 매체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해도를 높인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타이베이와 타이난에서 제작한 상견니 순례 지도
따라서 스크린 투어리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 차원에서 관광객 분산을 위한 관광 지원 정책 수립 및 관광 홍보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여행자도 지역 사회와의 상호 작용과 문화 교류에 깊은 관심을 갖고 현지 사회를 존중하는 태도로 여행에 임한다면 좀 더 다채롭고 풍부한 여행 경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속 '그곳'
영상의 감동이 살아있는 추천 여행지
슬램덩크 덕후들의 성지
일본의 '가마쿠라코코마에역'
▲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포스터
슬램덩크 덕후들의 성지
일본의 '가마쿠라코코마에역'
일본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가마쿠라'는 올해 초 새로운 극장판이 개봉했던 <슬램덩크> 시리즈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는 '가마쿠라코코마에역'은 슬램덩크 순례지로 덕후들의 발길을 모은다. 주인공 강백호가 여주인공 채소연을 기다리던 이 건널목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촬영한 후 해변을 따라 걸으면 애니메이션의 여운과 잔잔한 일본 바다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포스터
왕실 배경 콘텐츠의 단골 배경
영국의 '버킹엄 궁전'
영국 왕실에 70년 만에 새로운 왕위 대관식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는 만큼, 런던 여행 자체가 큰 특수를 맞았다. 특히, <더 크라운>을 비롯해 영국 왕실 배경의 콘텐츠를 시청한 이들이라면 2023년의 버킹엄 궁전 여행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전망이다. 실제로 버킹엄 궁전 가이드 투어는 1인당 90유로에도 불구하고 6월까지 모두 마감이다. 화려한 궁전의 전경, 그리고 관광 필수 코스인 근위병 교대식을 비롯한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더 크라운>의 공식 포스터 ▶
▲ <더 크라운>의 공식 포스터
영국 왕실에 70년 만에 새로운 왕위 대관식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는 만큼, 런던 여행 자체가 큰 특수를 맞았다. 특히, <더 크라운>을 비롯해 영국 왕실 배경의 콘텐츠를 시청한 이들이라면 2023년의 버킹엄 궁전 여행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전망이다. 실제로 버킹엄 궁전 가이드 투어는 1인당 90유로에도 불구하고 6월까지 모두 마감이다. 화려한 궁전의 전경, 그리고 관광 필수 코스인 근위병 교대식을 비롯한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상견니>로 떠오른 성지
대만 타이난의 '롱췐빙수집'
▲ <상견니> 공식 포스터
<상견니>로 떠오른 성지
대만 타이난의 '롱췐빙수집'
대만의 타이난은 드라마 <상견니>의 주요 배경지로 등장하면서 최근 아시아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테마 여행지로 거듭났다. 드라마에 등장한 설탕 꽈배기나 빙수, 냄비 우동은 모두 실제 식당과 노점에서 촬영했으며, 그중 타이난 롱췐빙수집(台南 龍泉冰店)은 3대째 이어지고 있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시장 거리에 자리 잡은 이곳은 작품과 동일한 비주얼의 대만 전통 빙수를 맛볼 수 있어, 내가 드라마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 <상견니> 공식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