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기쁨
글. 조승현 작가 (구리 어린이천문대장)
여름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의 애틋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견우별과 직녀별은 여름 밤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아마 고개를 들어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밝은 별이 몇 개 보인다면 필연적으로 직녀별과 견우별일 것이다. 로맨스가 넘치는 밤하늘이다.
대학교 2학년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대학은 천문학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서울에 학교가 있었다. 아파트의 불빛이 코 앞에서 쏟아지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몇몇 밝은 별은 볼 수 있었다. 과제를 핑계로 늦은 밤까지 남아 별을 봤다. 견우와 직녀별을 포함한 별 몇 개가 간신히 보였다. 함께 별을 보던 친구가 무심히 말했다.

"뭐야, 저 정도면 대충 만난 거 아니야? 견우별 직녀별 말고 보이는 별이 별로 없네. 그냥 눈앞에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했구먼 뭐"

친구의 말은 여름밤의 낭만을 산산이 부수었다. 과연 밤하늘에는 딸랑 몇 개의 별만 빛났다.

◀여름의 대삼각형을 이루는 밝은 세 별 중 왼쪽 위(직녀별), 오른쪽 아래 (견우별)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
나는 여행 중독자다. 깃털을 쫒는 고양이처럼 눈치를 살피다 기회만 되면 집을 뛰쳐나간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거만하게 누워 칵테일을 물처럼 들이켜는 휴양지도 좋고, 노오란 불빛을 장엄하게 쏟아내는 콜로세움 앞을 거니는 여행도 좋아한다. 제주 앞바다에 넋 놓고 앉아 딱새우를 무한 리필로 먹는 것도 환상적이고 말고.

그런 면에서 천문대 강사의 삶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별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갈 때다. 반쯤은 일로, 반쯤은 낭만으로 천체 관측 여행을 떠난다. 더 많은 것을 보아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천문대 강사로 살아가는 덕분이니까. 천문대 직원들과 일 년에 한두 번은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떠난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짙은 곳으로 떠나야 한다. 불빛과 멀어질수록 별빛과 가까워질 수 있다. 별을 잘 보려면 인류 문명과 멀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측지의 훌륭함과 불편함은 늘 공존한다. 최고의 관측지는 최고로 불편하다. 낭만적인 몽골의 은하수 관측지에는 변변한 화장실조차 없다. 초록 커튼이 춤추는 오로라 관측지에서는 영하 30도를 버티기 위해 사람들도 춤을 춰야만 한다.

더 멋진 밤하늘을 보려면 끝없는 불편함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편의 시설이 완비된 관측지, 추위와 더위 걱정이 없는 관측지, 차로 편리하게 도달할 수 있는 관측지, 대형 마트와 맛집이 즐비한 관측지 등등 편리한 장소를 찾아갈수록 수려한 밤하늘과는 멀어진다. 관측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별은 황량한 곳에서 빛을 발하기에.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
직장 동료들과 스위스 고산지대에 머물렀을 때였다. 삼일을 머물렀고, 삼일 내내 비가 왔다. 먹구름이 경주하듯 산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산안개는 매 순간 춤을 쳤다. 흐릿한 시선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산맥과 어우러졌다. 비 오는 알프스의 풍경은 완벽했다. 문제는 그곳에 별을 보러 떠났다는 거다.

여름철 견우와 직녀를 갈라놓는 진한 은하수를 보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스위스 '뮈렌'에 가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을 날아 런던에 도착했고 세 시간을 더 기다려 제네바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그 뒤로도 차와 기차를 번갈아 타야 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따로 없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바닥에 돌을 떨어뜨렸듯, 은하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귀한 시간을 뿌리며 별의 자취를 따라갔다. 그런데 비가 온 것이다. 맑은 하늘을 기대한 곳에 비라니. 시커먼 구름이 뮈렌을 거쳐 내 마음에 드리웠다. 빛을 피해서 스위스까지 왔지만 비는 피하지 못했다. 날씨가 따라 주지 않는다면 사실 훌륭한 관측지도 말짱 도루묵이다. 별 보기에는 운도 꽤 필요한 법이다.
여름 밤하늘의 환상적인 순간은 스위스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있었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천문대에서 아이들과 별을 봤다. 나에겐 매일같이 오는 평범한 직장이었다. 아이들은 천문대 관측실에 올라가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
"우와, 뭐예요. 저게 다 별이에요?"

레이저로 견우별과 직녀별을 가리켰다. 별이 넘쳤다. 넋을 놓고 보던 아이들이 고개를 잠깐 돌렸다가 다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갸우뚱하며 물었다.

"쌤? 직녀별이 어떤 별이라고요?"
"이거라니까 이거"
"별이 너무 많아서 헷갈려요"
"그럴 만도 해"
"견우와 직녀는 진짜 인연인가 보네요. 이렇게 많은 별 중에서 딱 두 별만 결혼했잖아요"

아이들의 순수한 상상력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난날 대학 과제를 하며 나눴던 친구의 메마른 감성과는 영 달랐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 은하수에는 약 3,000억 개 정도의 별이 있어. 1초에 별을 하나씩 찾는다고 해도 다 찾는데 만 년이나 걸린다고. 그 가운데 견우와 직녀가 만났으니 정말 천생연분이지?"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웃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태양이라는 작은 별 옆에 사는데, 우리 은하에는 이런 별이 3,000억 개쯤 돼.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또 3,000억 개쯤 되고. 별의 개수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의 개수보다 많지. 그 수많은 별 중 지구라는 곳에서 선생님과 너희가 만날 확률을 생각해 봐! 정말 기적 같은 일이지?"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
친구, 동료, 가족, 이웃... 세상 곳곳에 널린 만남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평범한 만남과 일상은 생각해 보면 모두 기적이다. 견우와 직녀도, 우리도 모두 기적 같은 만남 속에 살고 있다. 별을 올려다보는 순간 곁에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별을 보기 위해 꼭 스위스에 가지 않아도, 별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날씨를 가늠하고 적당히 어두운 곳을 찾아 고개를 들면 그곳에 직녀가 있고, 곁에 견우도 있다. 어쩌면 별에 대한 지식보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별 보기'에 가장 필요한 건 아닐까? 이번 여름엔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존재인 별을 바라보면서 그간 소홀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올려 보자. 여름밤의 별빛 아래서.

▲출처: 신용운 천체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