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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god)생 산다, “바른 생활의 루틴이”
갓(god)생 산다,
“바른 생활의 루틴이”

나는 전업 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삼십 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해왔습니다.
달리기 수영 아이콘

세계적인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의 ‘습관’ 즉, 일상 루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는 특히 일상의 자유도가 높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규칙성임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들어 소설가가 아닌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생(生)을 살아가고자 하는 신인류가 나타났습니다. ‘갓(god)생’이라 표현하며 바른 생활을 이어가는데요. 직장인은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스스로 준수하고, 학생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스터디 카톡방을 만들어 실천을 인증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도 ‘3분 양치하기’ 같은 작은 루틴을 지키며 나만의 성공 스토리를 모아 나가는 겁니다. 루틴(routine)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하는데, 외부적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루틴을 통해 스스로 자기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을 ‘바른생활 루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틴이들은 자진해서 목표를 만들어 자신을 묶고, 함께 ‘습관공동체’를 만들어 타인의 도장을 받으며, 매일매일을 되돌아보면서 의미를 부여해, 작은 성취를 확인해 나가는 열정을 지닌 세대입니다. 이들의 루틴이 3가지 실천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자기묶기(Self-Binding)’ 전략입니다.

자율적인 시간에서 스스로 규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프(바디프로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디프로필에 대한 검색량이 지난 1년간 50만 건을 넘어서며, 일종의 ‘청춘의 특권’처럼 기능하는 듯합니다. 몸을 열심히 관리하여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만, 바프는 자기를 규제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합니다. 특정 시점에 스튜디오 혹은 메이크업 샵을 예약해두고 그날에 맞춰 세부 계획들을 세워 자신을 그 규칙성에 가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실천 전략은
‘타인(他人)스탬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루틴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타인과 함께 하는 방법입니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자기 관리, 목표 달성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파트너를 응원해주는 셈이죠.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챌린저스’, ‘그로우’ 등 자기 관리 애플리케이션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매일 기부하기, 하루에 긍정적인 말 20회 하기, 부모님께 전화 드리기, 1만 보 걷기, 이른 아침 공부, 분리수거 하기, 감사하기, 영어 단어 외우기 등 목표도 다양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목표 달성 과정을 공유하고 서로 응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애플리케이션 ‘그로우’는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과 감사 일기 등을 글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기존 SNS와 같은 ‘피드’처럼 사용자들끼리 목표 달성을 응원하고 독려합니다.

어플리케이션 그로우
어플리케이션 챌린저스
▲ 애플리케이션 그로우와 챌린저스
세 번째 전략은
‘되돌아보기(Retrospect)’입니다.

“인생을 마지막 날처럼 살리라” 말은 하지만, 사실 하루라는 시간을 스스로 장악하지 못하면 각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루를 그럭저럭 보내기 십상이겠죠. 그래서 하는 것이 바로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 기록을 매일 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을 허비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꾸템 띵 하실래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띵’은 용품을 소분해서 나눠 갖는 것을 뜻합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의 일과를 쓰고 영화표, 영수증 등을 붙여 추억을 기록하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모아 사진첩을 만들기도 합니다. 교보핫트랙스의 꾸미기 용품(스티커, 메모지, 데코 테이프 등) 판매량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트렌드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연말(9~12월) 기준으로 꾸미기 용품 판매량 증가율은 29.2%에서 2020년 45.9%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판매량도 2019년 48만 개에서 2021년 71만 개로 훌쩍 뛰었습니다.

핫트랙스 다꾸템 판매량 추이
다꾸
▲ 핫트랙스 판매량, 다꾸

루틴이가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근로시간 축소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활과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자기 관리를 단단히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큰 성공이 어려워진 나노 사회에서 자아의 의미를 찾는 방도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미세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루틴이는 ‘업글인간’의 트렌드를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길 기대하며 노력하는 업글인간과 달리, 루틴이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인생이지만, 그 인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자기다짐적 삶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기업, 공공기관에서도 루틴이 개인들의 성실한 하루를 지원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점차 도입하고 있습니다. 인사 ·조직관리에서도 루틴이들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이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피드백 기반의 상시적 평가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죠. 문제는 신뢰입니다. 조직관리든 학교 교육이든 자녀지도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루틴이 트렌드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향상을 도모하는 존재이며, 나태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킬 모멘텀을 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연말연시는 특히 루틴이들을 위한 시기인 듯합니다. 이루지 못한 목표는 아쉽고, 아득한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노력했던 경험, 그 목표를 달성했던 성취감,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은 분명 변화의 씨앗을 심었을 겁니다. 우리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변화된 삶을 상상하고 그 하루 동안 조용하게 수련하는 동안, 각자는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변한 사람 하나가, 우리 공동체의 변화이며, 우리 국가의 혁신입니다. 우리가 내부에서 이룬 것으로, 우리의 외부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죠. 루틴이들이 이끌어낼 2022년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이수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저자소개
이수진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이수진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에서 소비자학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에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경제 흐름을 분석했던 실무와 소비사회 종단 연구를 기반으로 소비문화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며, 글로벌 소비문화를 비교론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매일경제TV에서 캐스터로 활동했으며, 한국FP학회 최우수논문상, 한국소비자학회 Doctorial Dissertation Competition 장려상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 삼성 등 다수의 기업과 소비 트렌드 기반 미래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