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금융복지제도는 빈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복지 이념이 바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예로부터 공동체를 중시했던 우리 역사 속 금융복지제도를 살펴봅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금융복지제도는 빈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복지 이념이 바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예로부터 공동체를 중시했던 우리 역사 속 금융복지제도를 살펴봅니다.

품앗이

국가 차원의 복지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 단위의 계를 조성했습니다. 마을 노동을 공동으로 해결했던 두레와 품앗이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들은 국가차원의 복지제도는 아니었지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연 복지제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두레와 품앗이를 통해 우리 민족들은 부족한 일손을 채우며 서로의 이익을 보장했는데요. 두레와 품앗이 중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품앗이입니다. 품앗이는 일을 하는 '품'과 교환한다는 뜻의 '앗이'가 결합된 말인데요. 두레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았지만 가래질하기‧모내기‧물대기‧김매기‧추수 등 한 가족의 부족한 노동력을 든든하게 채워줬습니다.

<김홍도의 밭갈이>

<고구려 고분 무영총 벽화>

진대법

구휼이란 재난을 당한 사람이나 빈민에게 금품을 주어 구제하는 복지정책을 말하는데요. 구휼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고구려 때 ‘을파소’라는 사람이 농민 구제책인 ‘진대법’을 최초로 건의하면서부터입니다. 진대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실시된 금융복지정책으로, 식구의 수에 따라 차등 있게 곡식을 나눠준 후 수확철인 10월 즈음에 빌려간 만큼 반납하도록 한 합리적인 제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쌀이 떨어지기 일쑤였던 3~7월 사이 보릿고개를 이겨낼 수 있었고, 더불어 착취를 일삼았던 귀족들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진대법의 우수성은 이웃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져 중국 후한의 금융복지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장생고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사원이 국가 경제의 한 축을 차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왕실과 귀족으로부터 적극적인 비호를 받아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고려시대 사원에는 ‘장생고’라는 서민금융기관이 설치됐습니다. 밭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기관입니다. 한편, 장생고에서는 오늘날의 사회공헌활동과 견주어볼 만한 자선행위도 이뤄졌습니다. 기부한 돈과 곡식으로 조성된 기금 ‘보’를 가난한 백성이나 병자를 위해 썼던 것인데요. 고려시대 광종 14년에 설치된 ‘제위보’가 보의 원조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교계의 폐해가 크게 노출되는 중기 이후부터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해 나중에는 오로지 이윤 추구만을 위한 고리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고려 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화>

<김홍도의 벼 타작>

의창과 사창

의창은 평상시 곡식을 저장했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저장한 곡식으로 빈민을 구제했던 구호기관입니다.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나 의창곡 확보의 실패로 사라진 것을 조선시대 성종이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절반 이상의 농민들이 나라에서 빌려준 곡식 종자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는데요. 그러나 분급한 의창곡을 제때 거둬들이지 못해 세조 때 다시 폐지되고 맙니다. 이에 세종은 민간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창’을 설립합니다. 사창은 관곡을 기반으로 하되 주민의 출자가 더해진 혁신적인 구휼제도였습니다. 전적으로 관곡으로만 운용되는 의창과는 큰 차이점이 있을뿐더러, 사창의 관리를 지역의 명망 있는 인사와 주민들이 함께한다는 점도 백성들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상평창

상평창은 의창, 사창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구휼제도입니다. 물가조절을 담당했던 고려의 제도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요. ‘상평’이란 상시평준(常時平準)의 약어로, 풍년에 곡물이 흔하면 값을 올려 사들이고, 흉년에 곡물이 귀하면 값을 내려 팔아 물가를 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평창에는 곡가의 부당한 변동을 방지하고, 곡가의 변동에 따라 생활을 위협받는 일반농민을 보호하며, 농민에게서 부당한 이윤을 취하는 상인의 활동을 억제하려는 ‘중농억상사상(重農抑商思想)’이 깔려 있는데요. 물가를 조절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홍도의 농자천하지대본>